경건한:’자연적인 사람,영적 사람 또는 육신의 사람?

바울이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에서 그는 세 종류의 사람들,즉 육에 속한 사람,영적인 사람,육신에 속한 사람을 가리킨다. 이 세 가지 유형은 무엇이며 당신은 무엇입니까?

우선,자연인이란 무엇인가?8511 그러나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이는 그것들이 그에게 미련하게 보임이라. (1 고전 2:

육에 속한 사람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이다. 그들은 성령에 의해 거듭난 적이 없으므로 성령은 그들 안에 살지 않습니다. 성령이 그들 안에 살지 않기 때문에,그들은 영적인 것을 원하지 않으며,그것들을 이해할 수도 없다. 바울은 하나님의 일이 이런 사람들에게 어리석다고 말합니다. 그들에게 구원과 그리스도께 항복하는 것은 시간 낭비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보다,그들은 오히려 자기를 위해 살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그러한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서서 그들의 죄 때문에 심판을받을 것입니다. (계 20 장 참조:11-15)

바울이 언급하는 두 번째 유형의 사람은’영적인 사람’이다.

그러나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심판하지만,자기는 아무에게도 옳게 심판을 받지 않는다. “누가 주님의 마음을 알고 그분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2:15-16)

아마도 영적인 사람에 대한 바울의 묘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그 사람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과 동등한 완전성 또는 무오성의 수준에 도달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 하늘의 관점에서 삶을 볼 수 있도록하고 따라서 현재와 영원 모두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자신의 영적 지혜를 공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떻게 사람이 영적인 사람이 되는가?

첫째,영적인 사람이 되려면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요한복음 3 장 참조)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영적인 사람은 또한 그의 생명이 하나님의 영의 통제하에있는 사람입니다. 바울이 쓴 것을 주목하십시오-

그러나 쓰여진대로: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일을 눈으로 보지 못하였고 귀로도 듣지 못하였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들어가지 못하였느니라.””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영을 통해 우리에게 그들을 계시했다. 성령은 모든 것,곧 하나님의 깊은 것을 살피신다. 사람이 사람의 사정을 아는 것이 그 속에 있는 사람의 영 외에는 무엇이뇨?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하나님의 일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1 고전 2: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현존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분의 깊은 영적 진리를 드러내신다. 이러한 진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방법을 포함한다. 우리는 이번 주에 영적인 사람에 대해 더 많이 연구 할 것이지만,간단히 말해서 영적인 사람은 영이 이끄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묘사하는 세 번째 유형의 사람이 있으며 그는’육신의 사람’이다.’그의 신약 성경 주석에서 워렌 위르 베는 육신의 사람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미성숙 한 그리스도인,그는 말씀을 먹고 성장하지 않기 때문에 어린 시절 수준에 사는 사람. 8511″형제들아,나는 영적 사람들에 관해서는 너희에게 말할 수 없었고,육신에 속한 사람들,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어린아이들에 관해서는 말할 수 없었다.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단단한 음식으로 먹이지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지금까지 능히 받지 못하였고 지금도 못하나니 이는 너희가 여전히 육신에 속하였음이니라 너희 가운데 시기와 다툼과 분쟁이 있는 곳에 너희가 육신에 속하고 사람 같이 행하지 아니하느냐 (고전 3:1-3)

‘육신’이라는 단어는’육신’을 의미합니다.”기독교인에게 적용하면,그것은 그들이 거듭나더라도 여전히 그들의 육체가 그들이 살고 생각하는 방식의 대부분을 통제 할 수있게 해주는 누군가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신자들을’육신’이라고 불렀는데,왜냐하면 그들은 여전히 영적으로 미성숙한 행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성령의 열매의 베어링–사랑,기쁨과 평화;이 신자들은 같은 오래된 육체의 감정에 항복했다:시기,분쟁과 분열. 바울이 말하는 것을 또한 주목-‘당신은 육신과 단순한 사람처럼 행동하지?”너희는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처럼 살지 않느냐?

오직 하나님만이 육신의 사람이 거듭났는지 아닌지 확실히 아십니다.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기보다는 당신과 나는 우리 자신을 판단해야합니다. 비록 우리가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을지라도,우리 삶에는 주님을 불쾌하게 하는 일이 있습니까? 우리의 기독교에 정정을 필요로 하는 육욕 있는가? 모든 신자들이’육신의 사람’이 아니라’영적인 사람’으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내일 우리는 다시 한 번 이 연구로 돌아가 이 중요한 주제에 대해 더 많이 배우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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